칼 뮐러는 1952년, 스위스 투르가우 주의 로그빌 자치체에서 태어났다. 취리히 공과대학(Swiss Institute of Technology in Zurich)에서 기계 공학을 전공한 뒤 1979년 한국으로 이주한다. 처음에는 서울대학교에서 국비장학생 신분으로 공부를 하였지만 그가 한국에 온지 7개월째에 박정희 대통령이 암살되면서 대규모 시위로 인해 서울대학교에 휴교령이 내려진다.
이 사건 이후 1980년, 칼 뮐러는 한국에서 직장을 찾게 된다. 시장의 틈새를 발견하고는 호텔에 납품할 스위스 특산품을 수입하는 회사를 창설한다. 이후 수년간 그는 한국에서 12개의 회사를 창립하여 레스토랑을 개관하고 섬유기계를 판매하며 한국에 스키를 처음으로 수입하는 무역상이 된다. 그가 손을 대는 분야는 모두 그에게 부를 안겨주었다.
성공에 대한 대가로 칼 뮐러는 정신적, 신체적으로 소진되고 말았다. 건강을 회복하기 위해 1990년 그는 모든 회사를 처분하고 스위스의 콘스탄스 호수 곁으로 돌아갔다. 거기서 그는 농장을 구입해 10년간 자급자족하는 삶을 살며 사립 비영리 거주형 재활원을 설립한다. 그러나 3년 후, 자금이 바닥나며 7일장에서 객상(客床)으로 일하기 시작한다.
한국에서 칼 뮐러는 점질토의 효과적인 특성을 발견한다. 물이 논에서 천천히 빠져나감에 따라 논바닥은 서 있거나 걸어 다니기에 아주 부드럽고 탄력있게 되었다. 이때 그는 마치 하늘이 내려준 선물같이 MBT를 착안하였다. 그는 연구에 착수했고 스스로가 실험대상이 되어 이 개념을 발전시켜 나갔다.
1997년 칼 뮐러는 MBT(하이퍼링크) 신발을 시장에 출시하며 ‘구르는 밑창’으로 신발업계에 혁신을 불러일으킨다. 이 구르는 밑창은 치료 요법으로써의 효과가 입증되어 오늘날 전세계적으로 100여개가 넘는 업체에서 이를 따라하고 있다.
칼 뮐러는 논바닥의 좋은 기분을 모방하기 위한 더 나은 방법을 개발하기 위해 계속해서 연구에 매진하였다. 그가 개발한 부드럽고 탄력있는 밑창은 차세대 MBT 제품으로 개발되지 못하였는데 이는 소주주들이 둥근 밑창만을 고집함에 따라 2006년 회사를 떠나게 된다. 이러한 사건은 kyBoot라는 새 브랜드의 개발로 이어졌다. 2007년 칼 뮐러는 kybun AG를 창립하여 kyBoot와 기타 동반 제품을 개발하기 시작한다.
kyBoot는 기분 운동 개념의 일부로 여기에는 kyBounder(부드럽고 탄성있는 매트)와 kyTrainer(부드러운 런닝머신)이 포함된다. 스위스 일간지 SonntagsZeitung에 따르면 칼 뮐러는 스위스에서 가장 혁신적인 사업가들 중 한 명으로 디자인의 역사를 새로 썼다고 평가받는다.
뮐러 가의 KM 재단법인은 칼 뮐러의 사회적 헌신의 중요한 부분이다. 이 기관은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돕는다는 기독교 정신에 입각하여 설립되어 세계 곳곳의 사회적 약자를 돕는다.